
내가 기억하는 가장 처음에 했던 온라인 게임이 포트리스 2다. 닉네임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던 시절이었다. 형이 “닉네임 뭘로 할 거냐”고 물었는데 닉네임이 뭔지 몰라서 멍하니 있다가, 뭔가 멋있는 이름을 지어야 한다는 것만 어렴풋이 이해하고 내놓은 게 모듬의전사였다. 왜 그 이름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냥 그때 머릿속에서 떠오른 게 그거였다. 형은 웃었을 것 같다.
포트리스 2는 1999년 10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온라인 게임이다. 개발사는 CCR. 턴제로 포탄을 쏴서 상대를 맞히는 슈팅 게임인데, 바람의 방향과 세기, 발사 각도와 힘을 계산해서 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물리 계산 같은 건데, 그때는 그냥 감으로 쏘고 맞으면 좋고 안 맞으면 아쉬운 게임이었다.
형이 다 하고 나면 내 차례
컴퓨터는 한 대였다. 형이 먼저 쓰고, 형이 다 하고 나면 내가 할 수 있었다. 형이 게임을 오래 하는 날은 내 차례가 안 올 때도 있었다. 그래서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바로 달려가서 앉았다. 잠깐이라도 포트리스를 하고 싶었으니까. 지금이야 각자 스마트폰이 있고 각자 컴퓨터가 있지만, 그때는 한 대의 컴퓨터를 두고 형제가 순서를 기다리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 잠깐의 시간이 아까워서 로딩 화면조차 조급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슈탱을 뽑고 싶었다
탱크 종류가 여러 가지 있었다. 돌을 던지는 캐터펄트, 독화살을 쏘는 크로스보우, 미사일을 날리는 미사일 탱크, 레이저를 쏘는 레이저탱크. 그리고 모든 탱크 위에 군림하는 존재, 슈퍼탱크. 슈탱이라고 불렀다. 체력도 최고, 공격력도 최고, 방어력도 최고. 3발의 미사일이 각각 4연속으로 폭발하는 일반 무기와, 유도 기능이 달린 9발짜리 특수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걸 갖고 나오면 그 판은 사실상 끝이었다.
문제는 슈탱을 직접 고를 수 없었다는 거다. 오직 랜덤을 선택했을 때만, 낮은 확률로 등장했다. 총 13종류 탱크 중 하나가 랜덤으로 배정되니까 단순 계산으로 약 7.7% 확률이었다. 슈탱을 뽑고 싶어서 랜덤을 눌렀지만, 매번 평소에 안 하던 탱크가 나왔다. 돌탱이 나오거나 방구탱이 나오거나. 익숙하지 않은 탱크로 게임을 하면 감이 안 잡혀서 어려웠다. 늘 쓰던 탱크를 고르면 편한데, 슈탱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랜덤을 누르는 그 심리가 일종의 도박이었다. 어린 시절 나름의 가챠였던 셈이다.
바람을 읽는 게임
포트리스의 핵심은 바람이었다. 턴마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가 바뀌었고, 그걸 감안해서 각도와 파워를 조절해야 했다. 바람이 왼쪽에서 오면 약간 오른쪽으로 틀고, 바람이 강하면 힘을 덜 주고. 이 계산을 머릿속으로 하면서 포탄을 날리는 건데, 맞았을 때의 쾌감이 정말 컸다. 특히 맵 반대쪽 끝에 있는 상대를 한 방에 맞혔을 때, 화면에 데미지 숫자가 뜨면서 상대 탱크가 흔들리는 그 장면. 그게 좋아서 계속 했다.
지형도 중요했다. 폭발하면 땅이 파였고, 파인 곳에 들어가면 방어에는 유리하지만 나오기 어려웠다. 반대로 높은 곳에 올라가면 멀리 쏠 수 있지만 맞기도 쉬웠다. 단순한 듯 보이면서도 턴마다 판단해야 할 게 많은 게임이었다.
첫 온라인의 감각
포트리스 2가 내게 특별한 건, 화면 저쪽에 진짜 사람이 있다는 걸 처음 느꼈던 게임이기 때문이다. 패미컴이나 새턴은 옆에 앉은 형이나 친구가 상대였지만, 포트리스는 어딘가에 있는 모르는 사람이 상대였다. 채팅 창에 글씨가 올라오고, 그 사람이 쏜 포탄이 내 탱크를 맞히는 그 경험. 그게 처음이었다. 지금이야 온라인 게임이 당연하지만, 그때는 “컴퓨터를 통해서 모르는 사람과 같이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21년을 버텼다
포트리스 2는 1999년 10월에 시작해서 2020년 12월 31일에 서비스가 종료됐다. 무려 21년. 중간에 포트리스 2 블루에서 포트리스 2 레드로 리뉴얼되기도 했지만, 본질은 같은 게임이었다. 2018년에는 모바일 버전인 포트리스M이 출시돼서 현재도 서비스 중이다. 2025년에는 3년 만에 대규모 업데이트와 함께 2026년까지의 장기 로드맵이 공개됐다고 한다. 포트리스라는 이름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게 반갑다. 하지만 내가 모듬의전사라는 닉네임으로 형 몰래 접속했던 그 포트리스 2 블루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닉네임의 기억
지금은 온라인 게임 닉네임을 지을 때 중복 확인을 하고, 특수문자를 넣을지 말지 고민하고, 나중에 바꿀 수 있는지까지 따진다. 그때는 그런 것 없이, 형이 “뭘로 할 거냐” 하면 떠오르는 대로 말하면 그게 닉네임이 됐다. 모듬의전사. 그 이름으로 슈탱을 뽑으려고 랜덤을 돌리고, 바람을 읽으면서 포탄을 쏘고, 형이 컴퓨터를 다 쓸 때까지 기다렸던 그 시간들. 내 첫 온라인 게임의 기억은 게임 화면보다 컴퓨터 앞에 앉기까지의 과정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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