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
열혈농구를 처음 켰을 때 기억나는 건 비행기였다. 오프닝에서 쿠니오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걸 보고 “아, 이번에는 해외 가는 이야기구나”라고 바로 알았다. 어디로 가는지는 잘 몰랐다. 그냥 외국이었다. 커서 찾아보니 퀴즈 대회에서 한 문제를 맞혀서 미국 여행권을 따낸 거였고, 리키랑 고다이는 비행기에 매달려서 무임승차로 따라간 거였다. 열혈 시리즈는 이런 황당한 설정이 늘 재밌었다.
정식 이름은 열혈! 스트리트 바스켓 ~힘내라 덩크 히어로즈~. 1993년 12월 17일에 패미컴으로 나왔고, 열혈 시리즈 패미컴 마지막 작품이었다. 그때는 당연히 그런 건 몰랐고 그냥 “열혈농구”라고 불렀다.
골대에 링이 3개 달려 있었다
이 게임이 보통 농구 게임과 완전히 달랐던 건 골대에 링이 3개 있었다는 거다. 백보드 하나에 높이가 다른 링 세 개가 붙어 있었다. 슛을 쏘면 공이 얼마나 높이 올라가느냐에 따라 어떤 링에 들어가는지가 달라졌다. 1단만 통과하면 점수가 적고, 3단까지 쭉 통과하면 점수가 확 올랐다. 그래서 어떻게든 높이 쏘려고 골대 바로 아래까지 달려가서 슛을 눌렀는데, 가까이 가면 상대한테 맞아서 공을 뺏기기 일쑤였다. 멀리서 안전하게 넣을 것이냐, 가까이 가서 높은 점수를 노릴 것이냐. 어린 머리로도 그 줄다리기가 재밌었다.
링이 떨어진다
슛을 계속 넣다 보면 어느 순간 링이 백보드에서 떨어졌다. 처음에는 고장 난 줄 알고 당황했다. 그런데 떨어진 링을 캐릭터가 주울 수 있었다. 주워서 들고 상대편 백보드로 달려가서 붙이면 됐다. 백보드의 어느 높이에 붙일지도 선택할 수 있어서, 내가 잘 넣을 수 있는 높이에 갖다 붙이면 그만큼 득점 기회가 늘어났다. 링은 백보드에만 붙일 수 있었지만, “농구 게임인데 골대를 떼서 옮긴다”는 발상 자체가 충격이었다. NBA 게임에서는 절대 안 되는 짓이었으니까.
필살슛이랑 격투
열혈 시리즈니까 당연히 때릴 수 있었다. 공이고 뭐고 그냥 펀치 킥부터 날리는 게 일상이었다. 쓰레기통을 상대 머리에 씌울 수도 있었고, 사다리를 골대 링 위에 올려놓으면 상대 슛을 막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필살슛. 대시하고 공을 세 번 정도 튕긴 타이밍에 슛을 쏘면 캐릭터마다 다른 필살슛이 나갔다. 이 타이밍 잡는 게 진짜 어려웠다. 형은 감으로 잘 쐈는데 나는 열 번 중 두세 번 나오면 다행이었다. 필살슛을 못 쓰면 게임이 확 어려워졌기 때문에, 사실상 이 게임의 난이도는 필살슛 타이밍을 익혔느냐 못 익혔느냐에 달려 있었다.
열혈하키도 싸우는 게임이었지만 농구는 느낌이 좀 달랐다. 하키가 빙판 위에서 옆으로 치고받는 느낌이었다면, 농구는 위아래로 점프하면서 공중에서 부딪히는 느낌이었다. 골대가 3단이니까 자연스럽게 화면이 위아래로 많이 움직였는데, 3단 높이에서 슛을 쏘고 나면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하나도 안 보였다. 내려와 보면 이미 상대가 공을 들고 달리고 있고.
스테이지마다 다른 세상
미국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시합하는 구조였는데, 스테이지마다 배경이 다르고 거기에 있는 사물도 달랐다. 하와이에서는 파라솔 위로 뛰면 골대 앞까지 날아갈 수 있었고, 텍사스에서는 말한테 다가가면 발에 걷어차여서 골대 쪽으로 날아갔다. 라스베가스에서는 골 넣을 때마다 슬롯머신이 돌아가서 그림이 맞으면 점수가 몇 배로 뻥튀기됐다. 그때는 그냥 “우와 배경이 바뀐다” 정도로만 느꼈는데, 지금 보니 스테이지마다 전략이 완전히 달라지는 구조였다.
상대를 이기면 아이템을 선물로 줬는데, 장비하면 능력치가 올라갔다. 지금 공략을 보니 초반에 라스베가스 팀을 먼저 잡아서 ‘나리킨 슈즈’를 얻고 시작하는 게 정석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그냥 순서대로 했으니 모를 수밖에.
지금 다시 하려면
열혈 스트리트 바스켓은 쿠니오 군: 더 월드 클래식 컬렉션(Nintendo Switch·PS4, 2018년 12월 20일 발매)에 수록되어 있다. 패미컴 열혈 시리즈 11작이 전부 들어 있어서 이 하나면 열혈하키·열혈축구·열혈농구를 다 할 수 있다. 패미컴 시절에는 2인까지였는데 컬렉션에서는 최대 4인 동시 대전이 가능하다.
내 첫 농구 게임
누군가 “첫 농구 게임이 뭐였어?”라고 물으면 나는 이 게임을 떠올린다. 골대에 링이 3개 달려 있고, 공보다 주먹이 먼저 날아가고, 링이 떨어지면 주워서 백보드에 다시 붙이는 농구. 정규 농구 규칙과는 한참 멀었지만, 그래서 더 강하게 남아 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가서 길거리에서 공을 던지던 그 도트 화면이 나한테는 농구라는 스포츠의 첫 이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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