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던 삐에로의 BGM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 – 나이츠(NiGHTS into Dreams)

나이츠 패키지 사진

CD를 넣으면 하늘이 열렸다

세가 새턴은 나에게 “CD 게임기”였다. 슈퍼패미컴의 카트리지와 달리 은색 디스크를 넣으면 로딩 화면이 나오고, 그 잠깐의 기다림 뒤에 카트리지로는 불가능했던 세계가 펼쳐졌다. 나이츠가 딱 그랬다. 형이 디스크를 넣고 전원을 켰을 때 화면에 나타난 건 삐에로처럼 생긴 보라색 캐릭터였다. 이름이 나이츠라는 건 나중에 알았고, 그때는 그냥 “삐에로”라고 불렀다.

NiGHTS into Dreams는 1996년 7월 5일 세가 새턴으로 발매된 3D 액션 게임이다. 당시 세가 새턴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64와 치열한 삼파전을 벌이고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에는 파이널 판타지 7과 바이오하자드가 있었고, 닌텐도 64에는 슈퍼 마리오 64가 있었다. 세가는 그 대항마로 나이츠를 내놓았다. 전용 아날로그 컨트롤러까지 동시에 발매할 만큼 야심 찬 타이틀이었고, 패미통 1996년 판매량 조사에서 약 39만 장을 팔아 그해 세가 게임 중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어린 나에게 콘솔 전쟁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삐에로가 하늘을 나는 게 예뻤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링을 통과할 때의 속도감

나이츠의 게임 방식은 단순했다. 하늘을 날면서 링을 통과하고, 오브를 모으고, 제한 시간 안에 높은 점수를 받으면 된다. 하지만 그 단순함 안에 중독이 있었다. 링을 연속으로 통과하면 속도가 붙으면서 화면이 빨라지고, 그 감각이 어딘가 익숙했다. 소닉이었다. 루프를 달리며 가속하는 소닉의 그 느낌이 하늘 위로 옮겨온 것 같았다. 어린 나는 “소닉 만든 사람이 이것도 만들었나?”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다.

크고 나서 알게 됐다. 진짜 그랬다. 나이츠를 만든 건 소닉 팀(Sonic Team)이다.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를 만든 바로 그 팀이고, 총괄 디자이너는 소닉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카 유지, 캐릭터 디자이너는 소닉을 디자인한 오시마 나오토였다. 어린 시절의 막연한 감각이 정확했다는 걸 20년 뒤에 확인한 셈이다. 그때 느꼈던 “역시 그래서 비슷했구나” 하는 신기함은 아직도 선명하다.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BGM

게임을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건 결국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나이츠의 BGM은 어린 시절 들었던 게임 음악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힐 만큼 좋았다. 작곡가는 사사키 토모코(佐々木朋子)로, 하타야 나오후미, 쿠마타니 후미에와 함께 사운드를 담당했다. 스테이지마다 분위기가 달랐는데, 봄밤의 초원 같은 곡이 있는가 하면 긴박한 보스전 곡도 있었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메인 테마 “Dreams Dreams”는 게임을 클리어한 뒤에도 한참을 멍하니 듣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에는 클리어를 못 했다. 형이 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멜로디가 남았다. TV 앞에 앉아 형의 플레이를 구경하면서, 나이츠가 하늘을 날 때 흘러나오던 음악이 방 안을 채우던 그 감각. 지금도 유튜브에서 “NiGHTS into Dreams OST”를 검색하면 그때의 거실이 떠오른다.

혼자서 하늘을 날아본 날

나이츠를 직접 플레이한 건 한참 뒤의 일이다. 2012년에 세가가 HD 리마스터 버전을 스팀(Steam)과 PS3, Xbox 360으로 발매했다. 한국에서도 스팀으로 구매할 수 있고, 비공식 한글 패치도 나와 있다. 세가 60주년 기념으로 무료 배포된 적도 있었으니, 운이 좋으면 라이브러리에 이미 들어 있을 수도 있다.

스팀 버전을 실행했을 때 타이틀 화면에서 “Dreams Dreams”가 흘러나왔고, 나는 잠시 멈췄다. 그 순간은 게임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기억을 여는 느낌이었다. 직접 아날로그 스틱으로 나이츠를 조종해보니, 형 옆에서 보기만 할 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였다. 링을 통과하는 타이밍, 루프를 그리며 점수를 올리는 감각, C등급 이상을 받아야 다음 스테이지로 갈 수 있다는 사실까지. 형은 그걸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던 거였다.

삐에로의 이름을 알게 된 뒤

어릴 때 “삐에로”라고 불렀던 캐릭터의 정식 명칭은 나이츠(NiGHTS)다. 꿈의 세계에서 악몽의 지배자 와이즈맨에 맞서 싸우는 존재이고, 한때 소닉에 이은 세가의 마스코트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았다.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았지만, 세가 새턴을 경험한 세대에게 나이츠는 여전히 특별한 이름이다.

2007년에 Wii로 후속작 “나이츠: 별이 내리는 밤의 이야기”가 나왔지만 평가가 좋지 않았고, 이후 시리즈 신작 소식은 없다. 나카 유지는 세가를 떠났고, 소닉 팀도 예전의 소닉 팀이 아니다. 그래도 1996년의 나이츠가 남긴 것들 — 하늘을 나는 부유감, 링을 통과하는 속도감, 그리고 “Dreams Dreams”의 멜로디 — 은 사라지지 않았다. 형 옆자리에서 들었던 그 음악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다섯 손가락 안에 있으니까.


나이츠, 지금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

가장 접근성이 좋은 건 스팀(Steam) HD 리마스터다. 원작 세가 새턴 버전도 포함되어 있어 두 가지 그래픽을 전환하며 플레이할 수 있다. PS3(PSN)과 Xbox 360(XBLA)에서도 구매 가능하며, 원작 새턴 실기를 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가격과 난이도가 높다. BGM만 듣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NiGHTS into Dreams OST” 또는 “Dreams Dreams”를 검색하면 전곡을 들을 수 있다.

댓글 남기기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