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이 무서웠지만 게임은 재밌었다 –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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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실이 무서웠다

형이랑 같이 오락실에 갔다. 혼자서는 못 갔다. 오락실이 무서웠으니까. 담배 냄새랑 형들 고함 소리가 섞인 그 공간이 어린 나한테는 좀 압도적이었다. 형 뒤에 서서 구경만 하다가 형이 “너도 해봐” 하면 그제야 조이스틱을 잡았는데, 뒤에서 기다리는 형들 눈치가 보여서 제대로 집중을 못 했다. 그래서 오락실에서 끝까지 해본 게임이 별로 없다. 근데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은 달랐다. 이 게임만큼은 형이랑 나란히 앉아서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난다.

오락실에서는 “야구왕”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오락실 아저씨가 기계 위에 한글로 “야구왕”이라고 써 붙여놨으니까. 정식 이름이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인 건 한참 뒤에 알았다. 1993년에 아이렘이라는 회사가 만든 아케이드 게임이었고, 최대 4명이 동시에 할 수 있는 벨트스크롤 액션이었다.

초록이는 내 꺼

캐릭터가 네 명 있었다. 빨강 호세, 초록 리노, 노랑 로저, 파랑 스트로. 색깔로 불렀지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오락실에서는 전부 “빨간 애”, “초록이”, “노란 뚱뚱이”, “파란 애”였다. 그리고 초록이는 언제나 인기가 제일 좋았다. 누가 먼저 동전을 넣느냐에 따라 초록이를 차지할 수 있었고, 초록이를 뺏기면 좀 억울했다.

초록이가 왜 인기가 좋았냐면, 썬더볼트 킥 때문이었다. 점프해서 공중에 있을 때 ↑↓+점프를 누르면 번개를 두르면서 화면을 종횡무진 날아다니는 기술이 나갔다. 이게 고유 기술이라 체력이 안 깎였다. 다른 캐릭터들은 화면 전체를 공격하는 초필살기를 쓰려면 체력을 크게 소모해야 했는데, 초록이의 썬더볼트 킥은 고유 커맨드 기술이라 체력 걱정 없이 마구 쓸 수 있었다. 위력도 강력했고, 히트 후에 무적 판정이 길어서 맞을 일도 거의 없었다. 오락실에서 백 원이 소중했던 시절, 체력 소모 없이 강한 기술을 반복해서 쓸 수 있다는 건 곧 “백 원으로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초록이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야구인데 야구가 아닌 세계

이 게임이 신기했던 건 적들이었다. 야구공이 걸어 다니고, 야구 글러브가 손을 벌리며 달려들고, 야구 배트가 적으로 나왔다. 야구 경기장이 배경인 스테이지도 있었고, 야구 장비들이 살아 움직여서 덤벼드는 게 어린 눈에 너무 신기했다. 보스도 거대한 야구공이나 야구 기계 같은 것들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야구를 소재로 한 게임인데 정작 야구는 안 하고 야구 도구들을 때려부수는 게임이라니. 이런 황당한 설정을 진지하게 만들어낸 게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

스토리를 커서 찾아보니, 야구 명예의 전당에서 유물들이 도난당해서 그걸 되찾으러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는 내용이었다. 최종 보스는 슈퍼 베이브 루스. 베이브 루스의 황금 동상이 살아 움직이는 거였다. 그때는 당연히 그런 스토리는 몰랐고, 그냥 야구 모양 적들이 신기해서 때렸을 뿐이다.

백 원의 무게

오락실 게임은 백 원을 넣어야 했다. 죽으면 또 백 원이었다. 그래서 오락실에서는 한 판 한 판이 진지했다. 집에서 패미컴 할 때처럼 가볍게 죽었다 다시 할 수가 없었다.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은 아이렘 게임치고는 난이도가 순한 편이었다고 하지만, 어린 나한테는 그래도 어려웠다. 초록이의 썬더볼트 킥에 기대서 어떻게든 버텼고, 형이 옆에서 같이 해주니까 둘이서 밀어붙일 수 있었다. 엔딩까지 봤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안 난다. 아마 못 봤을 거다. 하지만 형이랑 나란히 앉아서 조이스틱을 잡고 초록이랑 빨간 애를 골라서 적들을 팼던 그 시간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콘솔로는 안 나왔다

이 게임이 특이한 게, 오락실 전용으로만 존재했다는 거다. 패미컴이나 슈퍼패미컴으로 이식된 적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기판이 약 1,042대밖에 안 팔렸고, 그중 미국에는 고작 50대만 팔렸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오락실에서는 엄청나게 인기가 좋았다. 한국에서의 인기 덕분인지, 한국인 개발자가 원작자 드루 매니스캘코에게 직접 연락해서 판권 계약을 맺고 리메이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2013년에 나왔다. ‘야구격투 리그맨’이라는 이름으로 개발 중이었는데, 아직까지 정식 출시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겠지만, 나온다면 초록이를 제일 먼저 고를 거다.

오락실의 기억

집에서 하는 게임과 오락실에서 하는 게임은 느낌이 달랐다. 집에서는 편하게, 실패해도 부담 없이 할 수 있었지만, 오락실은 백 원의 긴장감과 옆 사람의 시선과 기계에서 나오는 소리가 전부 섞여 있었다. 나한테 오락실은 좀 무서운 공간이었고, 그래서 오히려 그 안에서 재밌게 했던 게임이 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닌자 베이스볼 배트맨은 그런 게임이었다. 무서운 오락실에서 형 옆에 앉아, 초록이 하나 믿고 끝까지 버텼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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