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깨면 또 다른 게임이 나오던 마법의 카트리지-별의 커비 슈퍼디럭스

게임 안에 게임이 들어 있었다

어릴 때 게임이 “끝나는” 건 아쉬운 일이었다. 엔딩을 보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런데 별의 커비 슈퍼 디럭스는 달랐다. 하나를 깨면 게임 선택 화면에 새로운 게임이 나타났다. 카트리지 하나에 여러 개의 게임이 들어 있었고, 깰 때마다 다음이 열리는 구조. 어린 나한테 그건 마법 같은 거였다.

1996년 슈퍼패미컴으로 나온 이 게임은, 정확히 말하면 하나의 게임이 아니라 옴니버스였다. ‘봄바람을 타고’로 시작해서, ‘다이나 블레이드’, ‘동굴 대작전’, ‘메타 나이트의 역습’, ‘은하수의 꿈’까지. 하나를 클리어하면 다음 게임이 해금되고, 게임마다 분위기와 난이도가 전혀 달랐다. ‘봄바람을 타고’는 가볍고 쉬운 입문편이었고, ‘메타 나이트의 역습’은 시간제한이 있어서 긴장감이 완전히 달랐다. 같은 카트리지 안에서 이렇게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깰 때마다 선택 화면에 새 아이콘이 뜨는 순간의 기대감은, 솔직히 지금 어떤 게임의 DLC를 살 때보다 컸다.

구르메 레이스, 아직도 듣는 BGM

별의 커비 슈퍼 디럭스의 수록 게임 중 ‘대결! 구르메 레이스’라는 게 있었다. 디디디 대왕과 음식을 먹으며 달리기 경주를 하는 미니게임인데, 이 게임의 BGM이 문제였다. 한 번 들으면 머리에서 안 빠진다. 빠르고, 경쾌하고, 달리고 싶게 만드는 곡. 이시카와 준이 작곡한 이 곡은 커비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BGM 중 하나가 됐고, 대난투 스매시 브라더스에도 편곡되어 실렸을 정도다.

나는 이 곡을 지금도 즐겨 듣는다. 출퇴근길에, 운동할 때, 뭔가 빠르게 끝내야 할 일이 있을 때. 서른 몇 살 성인이 커비 게임 BGM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두고 듣는 게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들어보면 안다. 이건 그냥 좋은 곡이다. 게임 음악이라는 틀을 빼고 들어도 좋은 곡. 어릴 때는 그냥 “신나는 노래”였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들으면 그때 TV 앞에 앉아 있던 내가 잠깐 돌아온다. 음악은 그런 힘이 있다.

형이랑 한 건 서브 게임이었다

별의 커비 슈퍼 디럭스에는 메인 게임 외에 서브 게임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펀치 챔피언(메가톤 펀치)’, 다른 하나는 ‘한판 승부(순간 베기)’. 둘 다 타이밍에 맞춰 버튼 하나만 누르는 단순한 게임이었는데, 2인 대전이 가능했다. 형이랑 내가 가장 많이 한 건 바로 이 서브 게임들이었다.

펀치 챔피언은 세 번의 타이밍 게이지를 맞춘 뒤 커비가 주먹을 날려 땅을 쪼개는 게임이었다. 게이지를 정확하게 맞출수록 펀치가 강해지고, 잘 맞추면 별 전체가 쪼개졌다. 형이랑 나란히 앉아서 한 번씩 번갈아 치고, 누가 더 멀리 갈라지나 비교하는 게 재밌었다. 한판 승부는 더 단순했다. 화면에 “!”가 뜨는 순간 버튼을 누르는 반사 신경 대결.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가 뜨면 둘 다 미친 듯이 버튼을 눌렀다. 너무 일찍 누르면 반칙으로 지는데, 형이 가끔 일부러 일찍 눌러서 지는 척 했는지, 진짜로 실수한 건지, 지금도 모르겠다.

메인 게임의 스토리를 깨는 것도 좋았지만, 형이랑 같이 한 건 결국 이 서브 게임이었다. 스토리 모드는 한 명이 커비를, 다른 한 명이 헬퍼를 맡는 협동 플레이였는데, 6살 차이 나는 동생한테 헬퍼를 맡기면 아무래도 발목을 잡으니까. 그래서 형이랑 가장 공평하게 대결할 수 있었던 건 버튼 하나로 승부가 갈리는 이 서브 게임들이었다. 나이도, 실력 차이도 상관없이, 타이밍 하나로 이길 수 있었으니까.

깨도 깨도 끝이 없던 카트리지

어른이 되어 이 게임을 다시 했을 때, 가장 놀란 건 볼륨이었다. 어릴 때는 게임 하나하나를 깨는 데 한참 걸렸는데, 어른의 손으로 하니까 ‘봄바람을 타고’는 10분이면 끝났다. 하지만 ‘동굴 대작전’의 보물 찾기는 여전히 재밌었고, ‘메타 나이트의 역습’의 긴장감은 어른이 돼서 오히려 더 잘 느껴졌다. 시간제한 안에 스테이지를 클리어해야 하는 압박감은, 어릴 때는 그냥 급하게 뛰어다니는 거였는데, 지금은 루트를 계산하면서 하게 된다. 같은 게임인데 플레이하는 방식이 달라진 거다.

메인 게임을 다 깨면 열리는 ‘격투왕의 길’도 다시 해봤다. 보스들을 연속으로 상대하는 보스 러시 모드인데, 어릴 때는 중간에 항상 졌었다. 지금은 카피 능력 선택부터 전략적으로 하게 됐다. 해머가 좋은지, 플라즈마가 좋은지 고민하면서. 어릴 때는 그냥 제일 멋있어 보이는 걸 골랐는데.

선택 화면 앞에서

별의 커비 슈퍼 디럭스를 다시 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게임 선택 화면이다. 동그란 아이콘들이 나란히 놓여 있고, 하나를 깰 때마다 새 아이콘이 열리는 그 화면. 어릴 때는 아직 잠겨 있는 아이콘이 뭘까 궁금해서 빨리 깨고 싶었고, 지금은 이미 다 열려 있는 아이콘들을 보면서 “이걸 다 했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구르메 레이스 BGM을 다시 들으면 그 시절 거실이 떠오르고, 펀치 챔피언을 켜면 형이 옆에 앉아 있던 감각이 돌아온다. 게임 선택 화면의 아이콘 하나하나가 추억의 문 같다. 누르면 그때로 돌아가는.

지금은 형 옆자리 대신 소파 한쪽에 혼자 앉아서 한다. 서브 게임을 켜도 대전 상대는 CPU뿐이다. 타이밍 맞춰 버튼을 눌러 이겨도, 옆에서 “아 씨” 하고 아쉬워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그때 형이랑 같이 했던 기억이 이 게임 안에 저장되어 있으니까. 세이브 데이터보다 오래 남는 종류의 저장.

별의 커비 슈퍼 디럭스, 지금 다시 할 수 있는 방법

별의 커비 슈퍼 디럭스는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에 가입하면 슈퍼패미컴 라이브러리에서 바로 플레이할 수 있다. DS로 나온 리메이크 ‘별의 커비 울트라 슈퍼 디럭스’도 있는데, 원작에 없던 신규 게임과 서브 게임이 추가되어 있어 볼륨이 더 크다. 구르메 레이스 BGM은 유튜브에서 “Kirby Gourmet Race”로 검색하면 원곡부터 오케스트라 편곡까지 다양한 버전을 들을 수 있다. 한 번 들어보시라. 서른이 넘어도 달리고 싶어지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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